기업 투명성과 변호사 윤리, 함께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사태,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 정말 나라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것은 어떤 포인트들일까? 법조인(미국 변호사)이자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 세종대 부총장, 신문사 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지난 10여 년 간 강단과 신문 방송을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의해 온 전성철 IGM 이사장의 눈으로 이 사태의 본질을 짚어 본다 (편집자 주)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사태, 과연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사태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 정말 나라의 미래를 위해 중요한 것은 어떤 포인트들일까? 법조인(미국 변호사)이자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 세종대 부총장, 신문사 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지난 10여 년 간 강단과 신문 방송을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의해 온 전성철 IGM 이사장의 눈으로 이 사태의 본질을 짚어 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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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삼성 사태, 어떻게 봐야 할까?
필자는 이 사태를 3 가지의 큰 줄기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삼성은 살아남아야 한다
첫 번 째 줄기는 이 사건의 종결이 그 과정이 어떻든 삼성이라는 세계적 기업이 영속되는 방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삼성 자체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것은 우리 온 국민에게 너무나 큰 손실일 것이다. 그 이유는 구태여 설명이 필요치 않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온 국민이 삼성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국민이 삼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겉으로 보기에 이번 사태는 참으로 어마어마하다. 천문학적인 비자금, 분식회계, 불법 로비, 횡령등 한 기업이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범죄가 다 망라된 느낌이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동안 한국의 대기업들이 거의 예외 없이 저질러 왔던 일들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문제들 뿐이라면 이 번 사태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일정한 대가를 치르고 마무리 지은 다른 재벌들의 선례가 있지 않은가?
삼성, 원죄부터 씻어야 국민에게 용서 받는다
현재로서는 삼성의 사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삼성에게는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원죄가 하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보는 2번 째 줄기는 바로 이 ‘삼성의 원죄’라는 부분이다. 이것은 국민이 잊기도, 용서하기도 쉽지 않은 원죄이다.
삼성은 한국 최대의 재벌이면서 무려 60개에 육박하는 (해외까지 포함하면 무려 120여개) 계열사를 가진, 한국 GDP의 10% 이상을 생산하는 대 기업 집단이다. 이 엄청난 재벌이 그 많은 돈에도 불구하고 온갖 편법을 동원, 단돈 100억 원도 안 되는 상속세를 내며 자식에게 그 제국을 상속하려 했다. 이것은 위법, 불법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염치, 양식의 문제이다. 삼성은 이 양식을 저버렸다.
문제는 삼성에게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려 60개가 넘는 삼성의 계열사 중 40여 개는 비상장사이다. 이 중에는 제일기획, 삼성SDS, 삼성석유화학, 삼성종합화학, 삼성카드 같은 알토란 같은 비상장사들도 다수 있다. 이 중 몇 개만 팔아서 당당히 증여세 내고 이재용 전무에게 증여하고, 이 전무로 하여금 그 돈으로 당당하게 주식을 사 모으게 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그 누구도 시비를 걸 수가 없다. 삼성의 문제는 그 60개의 계열사 중 하나도 팔지 않고 그 많은 것을 다 가지면서, 그것을 또 몽땅 거의 공짜로 상속까지 하려고 했다는 데 있다. 누가 봐도 과욕이었고 탐욕이었다. 이것을 국민은 용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원죄부터 해결하는 것이다. 삼성이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원죄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 해결의 단초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다른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상황에서 삼성의 정상화는 힘든 일이다
이 원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선 이재용 전무가 경영권 획득을 위해 그 동안 축적한 재산을 모두 포기, 내지 헌납해야 한다. 그리고 새 출발하는 방법이다. 그 새 출발은 이건희 회장 일가가 가진 다른 재산, 특히 비상장 계열사에서 출발해야 한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그 재산들을 정리하여 증여세를 납부하면서 증여하라. 그리고 이 전무가 이를 이용하여 합법적으로 당당히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주식을 인수하면 된다. 그 때야 비로소 국민은 삼성을 용서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삼성 문제의 해결은 이 용서의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든 일시적으로 넘기더라도 국민은 결코 삼성을 근본적으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삼성 사태를 계속 예측 불가능한 범주에 머물게 하면서 다른 모든 문제의 해결을 끊임없이 방해할 것이다. 이것은 이건희 회장 일가에게나 국민에게나 불행한 일이다.
삼성은 우리 국민의 경제적 소망의 상징이다. 그 소망의 불꽃이 계속 탈 수 있어야 한다. 그 불꽃은 용서의 토양 위에서만 계속 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윤리 저버린 김용철 변호사 징계해야
이 문제를 보는 3번 째 줄기는 김용철 변호사의 처신 문제이다.
미국에 소위 ‘미란다 경고’라는 것이 있다. 경찰이 범죄자를 체포할 때 범죄자에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와 묵비권이 있다’는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면 비록 그 범죄자가 죄를 자백하였다고 하더라도 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미란다 경고’ 때문에 수많은 범죄자들이 풀려났다. 경찰관의 단순한 실수 때문에 엄청난 죄, 심지어는 살인죄를 지었다고 자백한 흉악한 범죄자들까지도 무수히 방면되었다. 그 범죄의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황당한 일이다. 왜 이러는 것일까?
그 이유는 ‘한 시민에게 있어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는 그만큼 신성하며, 그 권리가 모든 시민적 권리의 기초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의 헌법은 ‘모든 시민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절대적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불리한지 아니한지를 알기 위해서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권리가 자신에게 있는지를 모른 체 자백을 했다면 그 죄가 아무리 크더라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보면 변호사의 존재는 시민의 권리 확보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이다.
한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변호사와의 솔직한 대화이다. 범죄인이 있었던 일 그대로를 변호사에게 알리고 변호사가 전체상황을 파악하여 무엇이 그에게 불리한지 아닌지를 판단해 알려 줄 수 있어야만 한다. 이 때 비로소 시민이 자신에게 부여된 헌법적 권리, 즉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뢰인과 변호사간의 솔직한 대화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솔직한 대화를 위해서는 변호사에게 한 이야기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의뢰인에게 주어야 한다. 그래서 변호사에게는 의뢰인의 비밀을 지켜야 하는 거의 절대적인 의무가 부과된다.
변호사의 기밀 유지 의무는 카톨릭 신부가 고해성사의 기밀을 유지해야 하는 의무, 의사가 아무리 흉악한 범죄인의 건강이라 할지라도 돌봐야만 하는 의무에 상당한 것이다. 신부, 의사가 의협심과 정의감에서 자신의 의무를 위배할 수는 없듯이 변호사도 의뢰인의 기밀을 지켜야 하는 의무만은 위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변호사가 이 의무를 위반하여 의뢰인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마치 환자가 나쁜 사람이라는 이유로 의사가 자신을 신뢰하고 몸을 맡긴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의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라는 신성한 의무 밑에 다른 의무를 종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삼성 그룹 내에서 김용철 변호사의 역할은 변호사였다. 보수를 월급으로 받는다고 해서 변호사가 아닌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삼성은 그에게 의뢰인의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김변호사의 모든 행위는 변호사 윤리 규정의 적용을 받는다. 삼성에 죄가 있다고 해서 의뢰인의 비밀을 폭로한 김 변호사의 행위가 민주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부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점이 덮어져서는 안 된다.
나는 미국에서 법조인으로 훈련을 받았고 미국과 한국의 법조계에서 활동한 바 있다. 미국에서 변호사의 기밀 유지 의무는 가장 신성한 의무로 간주된다. 그런 필자가 한국에 돌아와 변호사로 일하며 겪었던 현실은 때로 충격적이었다. 변호사의 기밀 유지 의무에 대해 사회 전체가 너무 소홀하고 방심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자 고발은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부자 고발도 더 큰 법익을 구성하는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살인자의 집에 경찰이 불법으로 침입하여 살인에 사용된 무기를 압수했다 치자. 법원은 그 살인자가 무죄방면이 되는 위험성을 무릅쓰고서라도 그 무기에 대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민의 사생활 보호라는 더 큰 법익을 지키기 위해서다. 신부가 신도의 비밀을 누설함으로써 1개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은 이와 같이 더 큰 법익을 놓치는 것이다. 환자가 흉악한 범죄인이라고 해서 의사가 아무렇게나 치료해 환자를 죽게 했다면 그 의사를 칭송하기 이전에 더 큰 법익이 저버려 진 것을 개탄해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이번 처신은 변호사 전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시민의 기본권 보장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김용철 변호사의 징계를 논의한다고 해 놓고 용두사미 식의 결과로 흐르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삼성을 조사하고 징벌하는 것은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몫이다. 그러나 직업윤리를 저버린 악덕 파렴치 변호사를 징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히 대한변협의 몫이다.
결론적으로 삼성 사태를 맞아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는 세 가지이다. 하나는 삼성이라는 기업이 영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삼성이 스스로 원죄를 해결하고 국민의 용서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진정으로 투명한 기업, 위대한 기업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의라는 명목으로 고객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한 변호사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도록 그 변호사에게 합당한 징벌을 가하는 일이다.
전성철 IGM 이사장
출처 : "
글로벌 스탠다드 리뷰"